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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농촌생활기 2편 - 김성령
조학제 기자 / 입력 : 2014년 05월 15일(목)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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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농에는 두 가지 결심이 있었다.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과 유기농 농법으로 작물을 재배하겠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 결심이 농사를 처음 시작하는 초보 농부에겐 무모한 도전일지 몰라도 나와 내 가족 또 이웃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용감하게 농부의 길에 도전장을 내고 시작한 첫 번째 농사는 파종을 한참 지나서 심은 감자와 야콘, 고구마였다.
약도 안치고 특별한 농사 기술이 없이도 키울 수 있다기에 선택했다. 그리고 늦었지만 장에 가면 마치 빈 밭을 채우기 위한 몸부림처럼 이것저것 눈에 띄는 대로 모종을 구해다 심기도 했다. 토마토와 가지, 땅콩, 옥수수, 수수, 호박, 단호박, 오이, 고추, 각종 야채 씨앗 등등... 심을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심어 보았다. 작물을 이것저것 심어놓고는 시간 날 때마다 밭에 나가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날이 점점 따뜻해질수록 비닐 피복 사이로 잡초가 무성해지고 심은 작물보다 잡초가 더 빨리 자라는 것이었다. 나는 매일매일 잡초제거에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날은 점점 따뜻해지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제초 작업이 더욱 어려워졌고, 풀을 다 제거하기도 전에 또 풀이 자랐다. 아침부터 해질 때 까지 그야말로 풀과의 전쟁이었다.
아랫집 아저씨는 나를 볼 때 마다 하시는 말씀이,
“제초제 치이소, 제초제 치이소.”
“제초제 안치면 안 되니더~ 풀 감당 못 하니더~” 하신다.
그래도 나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꿋꿋이 제초제를 치지 않았고 그렇게 별다른 대안 없이 오로지 호미와 낫만을 가지고 늦은 가을까지 풀과의 전쟁을 계속 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농업기술센터에서 한 농민을 만나게 되는데 그 농민 분께서 나의 무모한 잡초제거 방법을 들으시고는 ‘제초에 좋은 방법으로 부직포를 사용해보라’는 권유를 해주셨다. 마침 농업기술센터에 있었던 터라 기술센터 직원에게 부직포에 대해 문의하니.
“부직포는 제초 효과뿐 아니라 가뭄과 홍수 시 땅의 습기를 적절하게 조절해주는 역할도 해줍니다.”
하시며, “농사지으시면서 도움이 필요하거나 모르는 것이 있으면 언제든지 문의하세요.”
하셨다. 너무나 감사했다.
그때부터 나는 농사에 부직포를 구입해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제초효과는 정말 좋았다. 부직포 덕분에 습기 조절이 잘되어서 그런지 소출도 전보다 더 좋아진 것 같았고 무엇보다 부직포 사용 후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허비했던 시간과 노력이 많이 줄었다는 점에서 큰 소득이었다.
소출도 작년과 비교해보면 가뭄이 더 심했는데도 오히려 감자알이 고르게 훨씬 굵었고, 고추도 작년 면적의 4분의 1이하 정도밖에 안되었는데도 소출은 작년과 거의 비슷했다. 고추의 품질과 색상 크기도 고르게 좋았다. 지금 나는 부직포 마니아가 되었다.
부직포를 사용하는 것이 농사에 얼마나 유용하며 효과적인지 확실히 알았기 때문이다. 단, 부직포 가격이 어느 정도의 정부 보조를 받는다 해도 다른 제초 수단보다 다소 값이 비싸다는 것이 흠인데 이점만 좀 더 보완된다면 농민들이 제초제 사용을 줄이고 부직포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될 것 같다.
2011년 5월19일. 대장암 말기환자분이 우리 농장에 오셨다. 잘 알고 지내던 지인분의 남편 되시는데, 2년 전 우연히 대장에 암이 발견되어 투병 하시던 중 병원의 임상실험자로 1년 넘게 항암치료를 받으며 고생하시다가 이제는 가망이 없는 상태가 되어 현재는 죽음만을 기다리고 계신다고 하셨다.
처음 우리농장에 오셔서 공기가 좋다며 여기서 잠시라도 살고 싶다고 하시기에
“언제라도 오세요.”
라고 허락을 했다. 열흘쯤 되었을까? 그분(이 선생님이라 칭했다)이 짐을 챙겨 가지고 우리 집으로 요양을 오셨다. 생활하시기에 불편함 투성이인 우리 집에 농촌생활을 시작하고 첫 번째로 오신 손님이셨다.
나는 우리 집에서 가장 크고 좋은 방을 내어드렸다. 그리고 조촐히 환영파티도 해드렸다. 며칠이 지나고 환자분은 안정이 되셨는지 처음에는 식사도 겨우 하시고 걷지도 못하고 부축을 해야 겨우 움직이셨는데 일주일쯤 지나서는 밥도 한 그릇 씩 드시고 걷기도 하시고 혼자 화장실에도 가셨다. 그분 말씀으로는 맑은 공기마시며 소나무 기(氣)를 받아서 그런 것 같다하셨다. 내가 볼 때도 처음 오실 때보다 건강이 조금은 회복된 듯 보였다.
차츰 친해지면서 이 선생님은 당시 59세로 경북 의성이 고향이셨는데 젊어서는 수원에서 농업관련 일을 하셨고, 농업에 관련된 연구업적도 있으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또 건강이 회복되면 우리 농장의 일도 돕겠다고 약속 하시며 나에게 ‘귀농교육’이라는 것이 있는데 기회가 되면 받아보라 하셨다.
이 선생님은 ‘농촌은 기회가 있다.’ ‘땅은 거짓말하지 않는다.’며 나의 농촌생활을 격려 해 주셨고 요즘에는 농민을 위한 정부 정책도 많으니, 어려움이 있으면 읍사무소, 군청, 농업기술센터를 자주 찾아가 물어보라고 가르쳐 주시기도 하셨다.
그런 대화 후 안동대학교에서 귀농, 귀촌 교육이 있다는 소식이 들렸고 나는 주저함 없이 교육신청을 하게 되었다. 교육은 2011년 6월 27일(월)~ 7월 1일(금)까지 4박5일에 걸쳐 실시되었는데 전액 국비 지원으로 부담 없이 참가할 수 있었다. 귀농 귀촌 교육은 나에게 매우 유익했고 농업의 참된 가치와 가능성을 생각하게 했다.
전국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모였고, 귀농을 통해 성공한 사례, 날로 발전하는 영농기술, 여러 시행착오로 귀농생활의 어려움을 겪은 분들의 체험담, 갖가지 농촌생활의 해프닝들, 전문 교수님들이 제시하는 다양한 농촌의 미래, 가능성, 희망 등등 교육을 받는 내내 나의 마음은 앞으로의 농촌생활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었다.
급기야는 팀별 발표시간에 엉뚱하게도,
“저는 앞으로 농촌에 여성CEO가 되겠습니다.”
라는 발언까지 하였다. 귀농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밤하늘을 바라보니 수정같이 맑은 별들이 어느 때 보다도 더 밝게 보였다.
계속-3편은 다음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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